'푸른거탑 제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7.28 나의 군 생활 스토리 <푸른 거탑> - 04
  2. 2013.06.03 나의 군 생활 스토리 <푸른 거탑> - 03
  3. 2013.03.26 푸른 거탑 연재 - 01
posted by 행복한저널리스트 2013. 7. 28. 12:01

 

 

지난 날을 상기시켜 글을 쓰려고 하니 엄청난 곤혹이네요. 까마득한 옛날이라 기억도 안 날 정도이지만 혼신의 힘을 발휘해서 최대한 자세히 재밌도록 써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수양록을 펼쳐 보았습니다. 수양록은 군대 일기 같은 개념이라서 하루 일과를 일기로 기록하기 때문에 저의 에피소드를 끄집어 내기 위해 정독을 했습니다. (웃음)

 

 

군 기본 자세 확립 1주차

 

훈련소의 시작

 

사회에서 방탕하게 놀면서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는 것마다 어설프고 사고를 치는 게 훈련병들의 하루의 일이죠. 이등병이 됐다 하더라도 허당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을 겁니다 

입소대대를 떠나 훈련병들은 각 연대로 흩어져 군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되지요. 젤 처음 하는 것이 입소식입니다. 땡볕에 다 같이 모여서 입소식을 하게 됩니다. 7월 중순이었고, 그늘 한점 없는 연병장(운동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서 있으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덕에 10분 내외로 금방 마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육군훈련소> 

총기수여

짐을 풀고 5주간의 우리 집훈련소 관물대에 소지품과 자대에 가서 쓸 용품을 고이 모셔놓습니다. 훈련소 관물대에 보면 많은 훈련병이 했던 전투복이 놓여져 있죠. 손수 손빨래를 하여 가지런히 모셔 놓은 전투복이 3~4벌 정도 있습니다. 훈련병이 하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세탁기로 세탁하기 힘듭니다. 자연스럽게 손세탁을 하게 되면 대충 하게 되기 십상이고 위생상태 또한 좋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입소대대에서 받은 전투복은 자대에서 입어야 하기 때문에 고이 모셔놓고 일명 오버로크가 되어 있지 않은 전투복으로 환복을 환후 총기 수여를 단체로 받게 됩니다. 아주 무더운 날씨로 인해 강당에서 총을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버로크(?) 작업

강당에서 총기 수여식을 마친 후 K-2 소총을 생활관에 배치하고 난 후, 교육부사관과 조교의 통제하에 훈련병 번호가 찍힌 명찰을 전투복과 활동복에 다 손바르크(?)를 실시합니다. 모두 다 바느질에는 미숙한지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죠. 그 틈을 이용해 조교와 교관님은 훈련병들에게 훈련소를 하면서 지켜야 할 사항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출처 : 육군훈련소> 

 

정신교육

정신교육 시간이 1주차에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병영생활행동강령’, ‘복무신조’, ‘대적관을 외우는 것과 훈련병 수첩에 나오는 군가를 외우는 것에 1주차 집중적으로 교육을 실시했죠. ‘병영생활행동강령’, ‘복무신조’, ‘대적관을 저는 외울 생각도 없었고, 귀찮기도 해서 나 몰라식으로 하다가 4주차 때 겨우 외웠습니다. 어차피 외워야 할 건데 신경 써서 해서 전화포상도 받고 그럴 걸 하는 후회를 했었죠. 안 외운 사람은 외울때까지 시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4주차 정신교육 막 바지까지 안 외우고 버티다가 결국 다 외웠던 기억이 있네요. 여기서 드는 교훈은 시키는 것에 불만을 가지지 말고 열심히 하자입니다.

 

 

 <출처 : 육군훈련소> 

 

제식훈련

1주차이다보니 평소에 걷는 방법, 방향전환, 뜀 걸음, 군인의 기본자세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경례 하는법부터 전투복 입는 방법, 모자 쓰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배우게 됩니다. 군대에 가면 왼발이 젤 중요하죠. 왼발의 구령에 맞춰서 기본적인 제식을 1주차때는 배우게 됩니다. 무더운 여름이어서 많은 시간이 배정 되어 있었지만 급 속도로 배워, 자대 가서 좀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더웠고, 이런 훈련하기 싫어서 빨리 지나가길 바랬었는데, 자대에 가서는 미래 해둘걸이런 한탄을 내 놓았죠. 지적을 많이 받으니까 말이죠. (웃음)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 쓰기

1주차에서는 혹독한 훈련을 시키지는 않았습니다. 훈련소 3일까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소대장과 조교들이 말을 해주죠.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안가죠. 힘들게 들어왔는데 말이죠. (웃음) 저녁 점호 시간마다 일기 및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 시간이 10여 분 남짓이라 다 못 적을 때도 있죠. 그래서 취침하고 나서 몰래몰래 쓰곤 했었습니다. 동기들이 말이죠. 전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는 않았습니다. 잠깐 잠깐으로도 다 가능했으니까요. 저렇게 물불 안 가리고 쓰는 애들은 이성 친구가 있는 애들이니까요.

 

1주차 때는 적응 주라고 하여서 그렇게 힘(?)들게 하거나, 무리한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이점을 참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신교육이 주를 이룬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기본적인 제식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토리 텔링으로 하여서 쓰려고 하니 기억이 안 나고, 어렵군요. 예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예전 일기장도 꺼내서 되새겨 보기도 하면서 썼습니다. 훈련소에서 있었던 것은 주차로 나누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써야 할 거 같네요.

추억을 끄집어내서 재미를 주려니 힘드네요. 특별히 재미있는 부분도 없지만 말이죠.

 

posted by 행복한저널리스트 2013. 6. 3. 16:31

<사진 출처 : 푸른 거탑 홈페이지>

 

입소대대 안녕(?)

동반입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동반입대처럼 되어 버린 같이 오게 된 친구. 든든한 버팀목이었죠. 그러나

입소대대에서 연대가 갈립니다. 같은 27연대인데 중대가 달라서 한 층을 같이 쓰는데 복도에 가로막혀

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슬슬 걸어가서 아는 척하면 될 것인데, 군대 안이고 훈련소여서

더더욱 하기 힘들었습니다.

 

길었던 23일간의 기간이 지나가게 됩니다. 훈련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를 합니다. 받았던 물품을 정리하고 논산의 육군훈련소로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예전에는 입소대대가 훈련소 밖에 위치했는데 지금은 그 근방으로 이전했다고 하네요. 어차피 들어가게 되면 똑같습니다. 멀면 힘들고 가까우면 좋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올때 집가까우면 좋듯이, 이것도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 하는 겁니다.(웃음)

 

 

논산훈련소 생활관 전경<사진 출처 : 논산훈련소 홈페이지>

 

훈련소가 나를 반기다

7월 중순이 이었죠. 땡볕에 매미가 우는소리가 정말 정답게 느껴집니다. 모든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죠. 군인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요. 입소할 때 모였던 운동장(연병장)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모두 군인이기 때문에 가족, 친지, 친구가 있었던 그런 사근사근한 모습은 아니죠.

군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하죠. 이제 막 훈련병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에 너무 잘해주면 기강이 헤 이해 질 것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에 엄하게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입소대대에 입대한 친구들 중 집에 갈 사람은 빠져나가고 훈련소에서 군인으로 거듭날 사람으로 분류되어 각자의 길을 갑니다. 저와 친구 그리고 훈련병 친구들은 군인의 길을 걸어가게 되죠.

 

 

논산훈련소 내무반 전경<사진 출처 : 논산훈련소 홈페이지>

 

동향 사람들과의 만남

저희 훈련병 내무반은 부산 친구들로만 20여 명이 이루어졌네요. 15명 이상이 부산이었고 5명이 경남, 경기 쪽 친구들이었죠. 뭔가 모를 안정감이 느껴졌죠. 대부분이 친구이기도 했고 행복한(?) 군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5주 동안 기초 군사훈련을 시작합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형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입대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므로 인해 미국 시민권자는 포기하게 되었다고 하던데, 그때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가게 되니 언급을 하지는 않겠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네요.

 

 

논산훈련소 기독교 예배당<사진 출처 : 논산훈련소 홈페이지>

 

멀고도 먼 종교 시설

 

종교시설은 정말 멉니다. 저희 연대는 훈련소 제일 끝에 있어서 종교시설(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같은 종교시설은 논산훈련소 정문에 다 위치해 있죠. 그래서 한 시간 가까이를 걸어서 가야 합니다.

주말마다 정말 곤욕입니다. 한여름에 그늘 한 점 없는 도로 위를 걸어간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래도 갑니다. 훈련병이 어디서 못 간다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죠. 5주 내내 갑니다.

 

천주교에 가면 김태희가 있는 책을 준다고 하면 거기 가고, 기독교에서 CCM 가수인 여자들이 온다고 하면 또 다 몰려가고, 불교 가니까 그 당시 인기 있었던 하이킥을 보여준다는 소식을 듣고 갔었죠. 원불교를 가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제공해준다고 하면 가는 곳이 종교시설입니다.

 

양면의 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습니다만, 종교적인 신념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서 가는 게 대부분이죠. 그리고 종교모임에서 오래전 인연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것만큼 반가운 게 없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만. 훈련소 1주차, 2주차에서 5주차까지 있는데 패널에 나름 고참 훈련병이라는 5주차 훈련병이 글을 써서 놀립니다우리는 자대 너희는 x우리는 행군 너희는 화생방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렇게 쓰고 나면 혼이 나기도 하지만, 그것도 훈련소만의 문화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여름이었던 그 시기에 수영장에서 기독교 세례식을 해주더군요. 기독교를 갔던 사람들은 물벼락을

맞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시원해서 좋았다는 말들도 있었죠. 사람마다 개인이 차가 있는 것이니까요.

 

저희 기수에서는 정말 복 받은 군번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에 다 모여서 조깅하는 게 있는데,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덥다고 하지 않았죠. 혹서기에는 군의 국민체조(도수체조)만 하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훈련도

비나 온도로 인해서 많이 안 하기도 했고, 오침도 많이 해서 나름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훈련소

기간이었죠.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니 차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해 보겠습니다.

 

http://blog.daum.net/mma9090/6504 - 본 기사는 여기에 있습니다.

posted by 행복한저널리스트 2013. 3. 26. 13:01

나의 군생활 스토리

<푸른거탑 (출처 : http://bluetower.interest.me/)>

오래된 군 시절의 에피소드를 풀어놓아 정보와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저의 군 생활의 대부분을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푸른거탑>처럼 해볼까 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행정병의 위엄 (출처 : http://cafe.naver.com/lacettigt/582080)>

200779일 입대가 확정됩니다. 1511(전투정보) 일명 정보·작전병이라 일컫죠.

지휘통제실에서 간부들과 부대끼며 사는 병사들입니다.

잘하면 총애를 잘 받을 수 있는 보직이며,

못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할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보직입니다.

그 당시에는 행정병 같은 느낌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는데 실상 알고 보니 다른 면도 없지 않아 있었죠.

내용은 다음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번외 편으로 말이죠.

<·의경 홍보대사 크리스탈’ (출처: http://ap.police.go.kr/)>

입대를 하기 전에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내용은 기사를 올릴 예정이오니 그때 감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저는 군대 갈 생각을 합니다.

그리하여 1, 4월에 의무경찰에 지원하게 되고 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지 않았죠.

주변 지인들이 의경이라고 해서 결코 만만히 봐선 안돼 많이 힘들지도 몰라.

어찌 버틸래?”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었으니까요. 사촌 형님들조차도 말리더군요.

그래서 가지 않기로 합니다. 전 착한 아이니까요(?)

어찌 보면 제가 2번이나 지원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의경 면접을 보셨던 간부님이 그러셨죠.

군대에서 사회와 단절되는 거보다 여기서 사람 냄새나게 지내보는 것이 훨씬 났지. 좋은 선택 했다.”

라고 하셨죠.

그리하여 두 번이나 지원하게 되고 개인적인 저의 심경의 변화로 가지 않게 되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20대 초반의 기억을 장식해줄 좋은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네요.

물론 의경이 안 좋거나 필요없는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웃음)

주위에서의 겪은 이야기들이 좋지 않아서 20살의 어린 저는 그들의 말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요즘은 의경이 몇 번 뽑지 않아서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의경이든 현역이든 국민의 의무인 국방의 의무만 충실히 수행한다면 상관없지 않을까요?

077월에 입대 영장이 나옵니다. 그때쯤이 074월이었죠.

대부분의 친구는 군인이 되어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어다녔을 겁니다.

저도 몇 달 뒷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그해 5월까지 열심히 돈을 법니다.

077월에 입대하는 친구 2명과 함께 6월부터 7월까지 주야장천 PC방에서 놀고,

그냥 빈둥빈둥하면서 음주 가무를 즐깁니다. 돈 없고 그냥 울적하면 동네 몇 바퀴를 하곤 하며 돌아다니기 등을 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런지 많은 추억을 쌓은 것 같네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죠. 개인적인 이야기라 풀지는 못하겠네요. 2명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부득이하게 올리지 못하는 것은 양해 부탁합니다.(웃음)

이렇게 추억 만들기를 하고 있을 무렵에 생각난 것이 있었습니다.

창원에는 시내 중심지에 전쟁박물관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저희는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여기에 가서 이런 무기를 들고 싸우러 가는 건가라고 하며 말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군대에 가니까요. 그 당시 생각으로는 전쟁이랑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니깐요.

옛날 추억,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에 기회를 봐서 전쟁박물관을 한번 취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집 주변의 좋은 시설을 까먹고 모르고 있었군요.

이렇게 입대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세근세근 정말 긴장되더군요.(울음)

다음 편에는 입대와 함께 입소대대 때의 이야기를 풀어놓겠습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http://blog.daum.net/mma9090/6210 ← 본 기사는 여기에 있습니다.